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개역 한글, 마태복음 9:36)

꽤 오래전에 이 말씀을 보고 "민망히 여기다"라는 말이 요즘에 의미하는 것과 조금 다른 것 같아서 찾아보았던 적이 있다. 금방 알게 되었지만 여기서 의미하는 민망히 여기다는 다음 번역들에 의하면 "불쌍히 여기다"는 의미이다.

또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공동번역)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개역 개정)

또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져 고생하는 군중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 (현대인의 성경)

영문을 보면 단순히 불쌍히 여기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compassion이라는 뜻이다.

When he saw the crowds, he had compassion on them, because they were harassed and helpless,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NIV)

compassion의 어원을 살펴보면 com(together 같이)+passion(고통)을 뜻하며 같이 아파한다는 뜻이 된다. 한국말로 동정심이라는 말로 표현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듯 보인다.

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도 나온다.

(크리스쳔 투데이 - 한글성경의 번역오류의 실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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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慈悲), 인자(仁慈), 동정심(불쌍히 여김)이라는 어휘들은 각각 그 분명한 의미가 있는 어휘들이다. 그런데 한글개역성경은 이들 어휘들을 긍휼(矜恤)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어휘에 섞어서 써서 분명해야 할 의미들을 완전히 혼란시켰다. 영어성경으로 볼 때, tenderness, compassion, mercy, pity, kindness가 모두 때로는 긍휼, "민망히 여기다, 자비, 인자로 혼용되었다. love도 때로는 인자로 번역되었다. 그러니 누가 긍휼이나 민망히 여기사의 분명한 의미를 말할 수 있겠는가? 긍휼은 교회 내에서만 사용되는 중국식 어휘인 것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긍휼은 새로이 번역되는 성경에서는 그 사용이 완전히 배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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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passion의 성경 원문은?

그러면 성경 원문은 뭐라고 되어있을까?

민망히 여기다 혹은 compassion의 원문 ἐσπλαγχνίσθη은 마음, 간장, 허파, 창자(σπλάγχνον)를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라고 한다. 다음 링크를 올려두니 궁금하신 분은 참조하시라.

그런데 왜 하필 창자가 그 어원일까? 그것은 사랑과 연민의 감정이 내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라 한다. 현대에도 우리들은 마음이 우러나는 곳을 머리라고 하기도 하지만 심장 혹은 가슴이라고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가.

아무튼 이러한 내용을 알게된 후에 성경에 나오는 민망하다는 말이 나오는 구절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고, 예수가 느끼는 동정심이야 말로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신약 성경의 복음서를 보다 보면 예수가 compassion을 느꼈다는 부분이 상당수가 나오는데, 그러면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조금 더 살펴보자.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 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 (마태복음 20장 개역한글)

아...

4월16일

오늘은 4월 16일. 작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던 사건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 당시 그런 어처구니 없는 사건을 보고, 가장 기본적인 원칙, 기본 안전수칙, 메뉴얼 등등의 단어들을 떠올리며 한국은 그 기본조차도 안되있는 나라라는 것을 새삼 느꼈었다. 그 예전 삼풍사고의 충격보다 더했고, 대구 지하철 참사보다 더한 사건이 터졌던 것이다. 그런데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더욱 안타깝고 어처구니 없는 것이, 초동 대응만 잘 했었도 모두 살아날 수 있었다는 사건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가까운 일본도 세월호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1955년 시운마루호 사건으로 168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주목해볼만 하다. 일본은 선박 안전 기준/안전 대책을 비롯하여 이와 연관된 안전 기준 재정비. 선원 자격 기준 강화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것이 바뀌었고, 심지어는 시운마루호 사건에서 익사자가 가장 많았다고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 각급 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하고 수영 교육을 필수적으로 하게 되었고, 구조,구난 훈련교육을 주당 4시간을 하고 있다고 한다. (from 시사저널)

그런데 지난 1년간의 박근혜 정부의 대응은 어떠했나. 기본 안전장치가 없어 보이는 듯한 대형 안전사고가 몇차례 더 터졌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잠잠하다. 세월호 이후의 행태를 보면 거의 이해가 불가 수준이다. 이 정부는 인간으로 갖춰야 할 기본이 안되어있는 것일까? 동정심도 모르고 불쌍해할줄 몰라 보인다.

compassion...

예수는 동정과 연민을 느끼기만 하고 그냥 모른채 지나치지 않았다. 시각 장애자의 눈을 만졌고, 한센병(나병) 환자를 만지고 고쳤다. 개역한글 성경의 민망하다는 단어는 총 8회 나오는데, 구약 요엘서에 한번 나오고 나머지는 모두 신약성경 복음서(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성경)에 나온다. (물론 compassion은 NIV에서 찾아보면 신구약 성경에 두루 나온다.)

동정심, 연민, 불쌍해함, compassion은 사람으로 모범을 보이신 예수의 모습을 비춰볼 때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세월호 가족들이 느끼는 고통을 알 수는 없겠지만,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그들이 느꼈을 고통을 함께 느끼고 싶으며, 더 나아가 세월호 사건과 같은 안전 사고가 더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 원인을 성역없이 철저히 분석하여 그 진상을 규명하고, 썩은 곳을 찾아 도려내고 곪아터진 곳을 찾아내 고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기도해 본다.





by dumpcookie 2015. 4. 16. 08:47